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메르 제국 (문단 편집) === 성립 이전 === [[캄보디아]] 일대에 자리잡은 최초의 정치 세력은 인도-동남아계 왕국인 '[[프놈]](부남) 왕국'이었다. 1세기 경부터 6세기까지 존속했고, 전성기 시절에는 [[중국]]과 [[인도]]에도 사절단을 보내는 등 무역을 활발히 했지만, 국력이 강하지는 못했고 어디까지나 소왕국과 도시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하나의 체계적인 국가를 이루어내는 데까지는 실패했다. 이후 6세기 경 프놈 왕국의 속국, 혹은 그에 속해 있던 소왕국들 중 하나였던 [[첸라]] 왕국[* 중국식으로는 '진랍'이라고도 부른다. 이 시기 캄보디아 역사를 중국인들의 기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서 한자어 그대로 진랍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이 세력을 키워나갔다. 첸라 왕국의 국왕들 역시 옛 프놈 왕국의 전례를 본받아 [[인도네시아]]와 [[인도]], [[중국]]을 잇는 중계 무역에 열심이었고 힌두 문화를 중심으로 번영을 유지했다. 하지만 첸라 왕국도 7세기 경부터 급격히 몰락했다. 한 비문에는 첸라가 인근 자바 섬의 해적들과 사일렌드라 왕국의 침략을 받아 쇠퇴했다고 하지만 학계에서는 첸라가 과연 외세의 공격으로 쓰러질 정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였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첸라 왕국마저도 여전히 중앙집권화된 왕국이라기보다는 여러 번국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첸라 왕국은 자야바르만 1세가 죽고 난 뒤 남자 후계자가 없자 706년 아예 수진랍과 육진랍으로 분열되었다.[* 다만 진랍을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진랍'이라는 이름하의 여러 소국들의 집합으로 보고, 그 소국들이 육진랍과 수진랍으로 통합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데이빗 챈들러(David Chandler)가 대표적이다. 한국사로 예를 들자면 [[마한]]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이후 수진랍이 사일렌드라로 추정되는 [[자바 섬]]의 왕국([[마타람 왕국]])에 복속된다. 자바의 침공에 시달리다 못한 수진랍의 왕 [[마히파티바르만]]이 신하에게 >'''"내 소원은 자바 왕의 머리를 잘라 내 앞의 쟁반에 놓는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신하는 말조심하시라고 충언을 했지만 교만했던 왕은 아예 신하들을 모아 놓고 자기 소원을 공표해버렸다. 결국 이 말은 자바 왕 [[산자야]]의 귀에까지 들어가버렸고, 이에 분노한 자바 왕은 군사를 훈련하고 배 1,000여 척을 모아 수진랍을 침공했다. 결국 수진랍은 패망했고 왕은 생포당했다. 이때 자바 왕은 수진랍을 약탈하지 않고, 오직 왕의 수급만을 교만의 대가로 받아갔다. 이때 잘린 목은 육진랍으로 보내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